1958년 펜실베니아주 미드빌에서 태어난 샤론스톤은 5살 때 초등학교 2학년으로 조기 입학을 할 정도로 어릴적부터 머리가 뛰어났다.
IQ가 154라는 것을 증명하듯 월반으로 15세에 새거타운 고등학교에 진학, 졸업 후, 에딘보로 주립대학에 들어간 샤론스톤을 본 주변인들은 그녀가 변호사가 될 줄 알았다는데... 후에, 그녀는 자신이 멘사 출신이라고 밝혀 당시, 금발의 글래머는 머리가 나쁘다는 속설을 깨버렸다.
주위의 기대와는 달리, 평소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팬이었던 그녀는 17세가 되던 해 미스 펜실베니아 선발 대회에 참가하는데 그 때, 심사위원이 그녀의 미모를 보고 패션 모델이 되기를 권유. 그녀는 곧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떠나게 된다.
뉴욕으로 간 샤론스톤은 포드사의 패션모델로 일하며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며 프랑스판 보그에 표지모델이 되는 등
나름 성공을 이뤄내지만 배우가 꿈이었던 그녀는 잘 나가던 모델일을 과감히 그만두고 1980년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우디 앨런의 작품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의 단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그 후, '데들리 블레싱'(1981),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1982) 시트콤 'Silver Spoons1', 'Bay City Blues', '돌이킬 수 없는 차이' 등 여러작품에 출연하지만 변변치 않은 역활의 조연으로 나오다 1986년 코믹 어드벤처 영화 '솔로몬 왕의 보물' (King Solomon's Mines)에서 첫 주연을 맡아 열연 했지만 영화가 '인디애나 존스'의 아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망하게 되면서 주목을 받는데 실패하고 만다.
이 후에도, '콜드 스틸' (Cold Steel), 'Action Jackson', '형사 니코' (Above the Law) '폴리스 아카데미4' 등 17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80년대를 무명으로 보내게 된다.
그녀는 무명시절 온갖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는데...
1981년 브룩 쉴즈가 주연한 영화 '끝없는 사랑'. 사실 이 영화는 당시, 신인이었던 톰 크루즈와 샤론 스톤이 주연으로 채택되어 있었으나,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브룩 쉴즈가 배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뺐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실패했지만, 자신이 맡은 주연자리를 인지도에 의해 쉽게 뺐기는 설움을 맞봤고 1984년 프로듀서인 마이클 그린버그와 결혼하지만, 1990년에 이혼. 이 후, 돈이 없어 집 수리 비용을 벌기 위해 플레이보이에서 누드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 한줄기 빛이 내리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 '토탈리콜'이었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6천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급의 영화 '토탈리콜'에서 샤론스톤은 주연인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상대역으로 비중있는 인물로 참여.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2억 6120만 달러를 벌며 흥행하면서 덩달아 그녀를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샤론스톤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킨 영화는 '토탈리콜'이 아닌 '원초적 본능'이었다.
사실, 이 영화의 여주인공 자리는 샤론스톤이 아닌 킴 베이싱어였으나, 대본을 읽어본 그녀는 '이런 저급한 작품엔 출연하지 못한다'면서 거절. 이 후, 지나 데이비스, 줄리아 로버츠, 미쉘파이퍼를 포함한 13명의 여배우들에게 까이고 까이다 뒤늦게 샤론스톤에게 연락이 온 것.
이 영화가 이토록 여배우들에게 까인 이유는 당시 기준으로 수위가 매우 높은 자극적인 내용의 에로틱 스틸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0여년의 무명생활, 토탈리콜의 성공 이 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대' (He Said, She Said), '사랑의 선택' (Scissors) '히트맨' (Diary of a Hitman) '지옥의 일요일' (Year of the Gun), 'Where Sleeping Dogs Lie' 이렇게 내리 5편의 영화를 찍었으나 흥행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진 샤론스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하지만, 그렇게 각오를 했지만, 배역을 소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그녀는 촬영 내내 불안해하며 집중을 제대로 못해 배역에서 탈락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그렇게 고생해서 찍은 원초적 본능은 개봉 초기 자극적인 영화라며 각종 악평과 비난을 받았으나, 이와는 다르게 흥행에는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재미있는 것이 영화가 흥행을 하면서 초기의 비난과는 다르게 치밀하고 탄탄하게 짜여진 스토리와 배우들간의 치열한 심리전이 일품이라며 재평가를 받게 되면서 미국에서 1억 1,700만 달러, 그 외 해외에서 2억 3,500만달러, 총 3억 5,2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초대박을 이뤄냈고 그 동안 무명이었던 샤론 스톤은 단번에 최고의 섹시 여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원초적 본능이 이렇게 성공하는데에 있어 일등공신을 한 샤론스톤이 다리를 꼬는 장면은 사실, 대본에 없던 것이었으나, 감독인 '풀 버호벤'이 고등학교 시절 파티 때 어느 여학생에게 직접 겪었는 것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낸 것이라고 한다.
이 장면을 촬영할 당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거라며 감독이 속옷없이 찍을 것을 요구. 그녀는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흰색 드레스가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안보인다고 말한 감독의 말을 믿고 촬영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니터링을 한 결과 감독의 거짓말이 들통나고 이에, 샤론스톤은 감독의 뺨을 후려치면서 해당 장면을 삭제하지 않으면 변호사를 통해 항의하여 개봉까지 막겠다고 하였으나, 후에 작품성을 생각해 문제의 장면을 내보내게 허락했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결심은 개봉 이후 '영화를 안본 사람은 있어도 그 장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영화를 흥행가도를 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후, 수많은 패러디를 생성. 최근에는 모델 바바라 팔빈이 따라하면서 다시 한번 이슈가 되었다.
이렇게 화제의 인물이 된 그녀는 한국에서도 유명해져, 1995년 이맥스 광고에 출연하여 '강한 걸로 주세요'로 국내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는데, 에피소드로 '강한 걸로 주세요'라는 멘트는 사실 '강한 걸로 넣어 주세요'였으나 심의에 걸려 수정했다고...
원초적 본능 한편으로 대스타가 된 샤론스톤. 하지만, 이때 얻은 '섹시 여배우'라는 타이틀는 양날의 검과 같아 그녀에게 부와 명예를 주었지만 이 후, 그녀의 행보에는 방해가 되는 원인이 되고 만다.
1993년 샤론스톤은 '원초적 본능'의 성공 이 후, 그 여세를 몰아 관음증을 주제로한 스릴러 '슬리버'를 선보여 1억 1,63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나름 흥행을 했으나 '자기 현시를 위해 다른 여자들을 욕되게 하는 여자' 라는 비난을 받으며 골든 라즈베리 후보에 오르게 된다.
이 무렵, William J. MacDonald (일명 Bill MacDonald)를 만나게 되는데, 유부남이었던 그는 아내인 Naomi Baca와 이혼하고 샤론 스톤과 약혼했으나, 1년만에 깨지고 이때, 그녀는 FedEX를 통해 약혼 반지를 반환했다고 한다.
1994년에는 실베스타 스탤론과 '스페셜리스트'에 출연하여 1억 1,030만 달러를 벌어들이지만, 제15회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여우주연상과 실베스터 스탤론과 함께 최악의 스크린 커플상을 수상한다.
이에, 그녀는 이미지 바꾸기 위해 '퀵 앤 데드', '카지노'에 출연하여 연기 변신을 꾀했고 이러한 결과 '카지노'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그 후, 1996년에서 2000년까지 '디아볼릭', '라스트 댄스' - 1996. '마이티', '스피어' - 1998. '뮤즈', '글로리아', '심패티코' - 1999. '뷰티풀 죠', '더 월2' - 2000.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예전과는 달리 저조한 흥행 성적을 남기게 된다.
그러던 중, 2001년 몸이 이상해 병원을 찾았다가 뇌졸중 진단을 받는 샤론스톤. 이로 인해, 언어 능력과 시력 감퇴, 왼쪽 다리 감각이 상실 되는 장애를 얻게 되면서 1998년에 결혼한 뉴스 편집장 필 브론스타인과 2004년에 헤어지고 입양한 아들에 대한 양육권까지 잃는 고통을 받게 된다.
허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수년간 재활에 힘썼으며, 2003년 더 프랙티스 시즌8(The Practice)의 3회 에피소드로 복귀하여 제56회 에미상 시상식 드라마 시리즈부문 여우게스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내며 재기에 성공.
그 후, 콜드 크릭 매너 'Cold Creek Manor' (2003) 캣우먼 'Catwoman'(2004)으로 주류로의 복귀를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캣우먼 같은 경우,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역대 최악의 영화 중 하나'라는 평까지 듣게 된다.
결국, 원초적 본능 이후 14년만인 2006년 회심의 '원초적 본능2'에 출연하여 전라노출까지 강행했으나, 전작의 약 11%인 미국 597만 달러, 해외 3,265만 달러에 그치며 흑역사로 남게 된다.
2012년에는 필리핀계 전 가정부인 '어린다 T.엘레멘'에게 종교 및 문화적 차이를 모욕한 혐의로 피소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그녀는 '가정부가 해고당한 지 1년 반이 지난 후에 '이런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자신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한 것일 뿐'이라면서 반박했으나, 샤론스톤을 향한 대중들의 시선은 싸늘했는데...
이는, 1996년 영화 '디아볼릭'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이자벨 아자니'에게 심하게 텃세를 부려 아자니가 '다시는 샤론스톤과 영화를 안 찍는다'고 단언했던 과거를 대중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흘러 2015년.
샤론스톤은 또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는데, 미 여성 패션 월간지 '하퍼스바자' 9월호에 57세라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20대를 방불케 하는 몸매로 누드 사진을 게재한 것.
그녀는 사진과 함께 "나는 내 엉덩이가 마치 두툼한 팬케이크와 같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져 보이려하지 않는다" "진짜 섹시한 것은 가슴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이를 좋아할 수 있도록 자신을 아끼는 것", "즐기는 게 아닐까 싶다"라며 긴 재활 기간을 이겨낸 기념으로 누드를 찍은 소감을 이야기 했다.
이에, 대중들은 '한층 성숙해졌다'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화려했던 과거의 인기를 되찾으려는 추락한 여배우의 욕심과' '누드 사진을 통해 판매 부수를 늘리려는' '잡지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비관적인 반응으로 엇갈리게 된다.
이 후에도, 그녀는 꾸준한 연기활동과 더불어 에이즈 환자 인권운동, 성소수자 차별금지 운동 등을 해왔고 그 결과, 2019년 베를린에서 열린 매거진 GQ의 시상식에서 '올 해의 여성상'을 수상. 수상연설 때 원초적 본능의 유명한 장면을 재연해 화제가 되었다.
10여년의 힘든 무명생활를 버티고 섹시스타로 거듭났으나, 뇌졸중에 이혼까지 하는 악재에 휩싸이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온 후 전쟁반대, 인권운동, 빈민지역 아동 돕기, 에이즈 퇴치 등의 사회 실천가로 활동 영역을 넓힌 그녀.
섹시 스타로 추앙받으며 항상 자신의 외모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외적인 아름다움만큼이나 내적인 아름다움도 중요하다' 말하며 자신의 늙음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녀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뛰어넘어 완숙한 관능미를 지닌 진정한 섹시스타로 거듭난 배우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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