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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History] 42

마빈 해글러를 은퇴시켜 버린 멘탈 파괴자 - 슈거 레이 레너드 #3

1980년대 미들급과 웰터급을 대표하는 F4 중 2명인 '로베르토 두란'과 '토마스 헌즈'를 쓰러트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슈거레이 레너드. 허나 뜻하지 않게 부상 후유증인 '망막박리증'으로 인해 그는 돌연 은퇴를 하고 마는데... ​은퇴를 했지만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레너드는 약물에까지 손대며 하루하루를 폐인처럼 지내며 괴로워 한다. 그러다 결국 1984년 5월 링에 다시 돌아온 레너드는 '케빈 하워드'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르게 되는데 이날의 시합은 F4이자 라이벌이라 불린 '마빈 해글러'가 관전하러 와 더욱 관심을 모았다. ​허나 그는 예전의 레너드가 아니었다. 허나 레너드는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 평가받는 케빈 하워드에게 프로 데뷔 이후 최초의 다운을 당하며 고전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어나더 레벨 복싱 천재 - 슈거 레이 레너드 #2 (Sugar Ray Leonard History #2)

두란과의 2차전으로 WBC 웰터급 챔피언을 되찾은 레너드는 이 후 '래리 본즈'를 10라운드에, 우간다 영웅인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아유브 칼룰레'를 9라운드에 쓰러뜨리며 2체급 석권에 성공한다. ​그런 그에게 히트맨 '토마스 헌즈'가 도전하게 되는데...​토마스 헌즈는 F4 중 한명으로 203cm의 긴 리치를 활용한 플리커 잽으로 상대의 접근을 견제함과 동시에 노리는 곳을 정확히 공격하는 저격수 스타일로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를 KO로 잡고 WBA 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한 후 WBA/WBC 통합 타이틀을 노리고 있었다. ​1981년 9월 16일 ​세기의 대결이라 불린 이날의 시합을 보기 위해 라스베가스 시저스펠리스 호텔 특설링에는 2만 5천명의 관중이 몰렸고 그렇게 대전료 포함 흥행료만 무려 ..

상대를 약올려 멘탈 날리는데 도가 튼 천재복서 - 슈거 레이 레너드(Sugar Ray Leonard History)

뛰어난 순발력과 테크닉 영리한데다 화려한 쇼맨십까지 갖추며현역시절 프로 챔피언들이 꼽은 최고의 복싱 챔피언 1위에 선정되면서 80년대 '천재복서'라 불린 파이터.​195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월밍턴에서 일곱 자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레너드의 풀네임은 '레이 찰스 레너드'로 어머니가 좋아하는 가수인 '레이 찰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어릴적부터 말이 없었다'라 말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던 레너드는 먼저 복싱을 시작한 형 로지의 영향으로 글러브를 끼게 됐고 평소 자신이 존경하던 전설적인 복서 '슈거 레이 로빈슨'에서 영감을 받아 닉네임을 '슈거 레이 레너드'로 하게 된다.​복싱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내성적인 면에 숨겨져 있던 재능을 드러낸 레너드는 뛰어난 기량으로 아마추어 라이트 웰..

토크쇼에서 여성 게스트의 '모유'를 직접 먹은 진행자 - 폴드 리우 (Paul de Leeuw)

폴 드 리우 (Paul de Leeuw) 1962년 3월 26일생인 그는 네덜란드 텔레비전 발표자 , 코미디언 , 프로그램 제작자 , 배우 및 가수 등 만능 엔터테이너로 1986년 6월 1일 라디오로 데뷔하여 활동 영역을 넓히다 방송 회사 VARA의 TV쇼를 통해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명성을 얻게 됩니다.​그는 음악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주로 토크쇼에서 가혹하면서도 거침없는 유머 감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주로 자신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특유의 성향을 자주 들어내는데 특히 Langs de Leeuw라는 쇼프로그램은 컨셉 자체가 민감한 질문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다양한 손님과의 인터뷰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죠.​결국 모유수유를 주제로 한 에피소드에서 그는 ..

죽은 아내에게 바치는 기적의 올림픽 금메달 - 마티아스 슈타이너 (Matthias Steiner History)

죽은 아내와의 약속을 위해 기적을 들어올린 역도 선수"하늘에 있는 아내에게 이 금메달을 바치고 싶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적의 금메달리스트인 '마티아스 슈타이너'는 1982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배관 견습과정을 마쳤다. ​허나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늘어난 체중에 극심한 갈증, 시력 저하를 느낀 그는 병원을 찾았고 18세 생일에 자신이 '제1형 당뇨병' 판정을 받고 만다. 이에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한 그는 과거 역도 세계 챔피언을 20회 달성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1995년 역도를 시작. ​2000년 유럽 주니어 선수권 대회 94kg급에서 합계 320kg(인상:142.5kg, 용상:177.5kg)으로 8위에 올랐으며 2001년 유럽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는 360kg(인상..

빈민가 길거리 싸움꾼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세계 챔피언을 먹어버린 타고난 파이터 - 장정구 (Chang Jung Koo History)

한국 프로복싱 제11대 세계 챔피언이자 한국인 최초로 WBC가 선정한 25인의 복서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레전드 선수 1963년 부산 아미동 빈민가에서 태어난 장정구. 좋지 못한 환경속에서 어릴적부터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주먹쓰는 법을 체득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의 경기에서 다운이 되고 비틀거려도 끝까지 싸우는 김현치 선수의 모습에 반해 곧바로 어머니께 1500원을 받아 극동 체육관에 입관. 1975년 8월 복싱의 길로 발을 들이게 된다. 6개월 과정을 단 2개월 만에 터득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았던 장정구는 1976년 아마추어 복싱에 데뷔하여 부산 아마추어 최고 선수권 모스키토급 준우승, 부산 신인선수권 동급 우승, 최고선수권 동급에서 준우승을 하며 차세대 복싱..

죽은 아내에게 바치는 기적의 올림픽 금메달 - 마티아스 슈타이너 (Matthias Steiner History)

죽은 아내와의 약속을 위해 기적을 들어올린 역도 선수 "하늘에 있는 아내에게 이 금메달을 바치고 싶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적의 금메달리스트인 '마티아스 슈타이너'는 1982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배관 견습과정을 마쳤다. ​허나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늘어난 체중에 극심한 갈증, 시력 저하를 느낀 그는 병원을 찾았고 18세 생일에 자신이 '제1형 당뇨병' 판정을 받고 만다. 이에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한 그는 과거 역도 세계 챔피언을 20회 달성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1995년 역도를 시작. ​2000년 유럽 주니어 선수권 대회 94kg급에서 합계 320kg(인상:142.5kg, 용상:177.5kg)으로 8위에 올랐으며 2001년 유럽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는 360kg(인..

마라톤에서 동메달에 그쳤으나 그가 올림픽 영웅이 된 이유 - 반데를레이 지 리마 (Vanderlei de Lima history)

마라톤 경기 중 불의의 사고로 금메달을 놓쳤으나 탈인간급 인성을 보인 선수​2004 아테네 올림픽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에서 선두로 달리던 남자가 갑자기 습격을 당한다.​비운의 마라토너에서 영웅으로 - '반데를레이 코르데이루 지 리마' (Vanderlei Cordeiro de Lima)​마라톤 경기 중 습격을 받은 남자는 브라질 국가 대표인 '반데를레이 코르데이루 지 리마'로 1969년 브라질에서 태어났다.​16살때 마라톤을 시작한 리마는 1994년 프랑스 랭스마라톤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1996년 도쿄 마라톤(2:08:38)에서 우승하면서 주가를 올렸고 같은 해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로 출전했으나 신발에 문제가 생겨 첫 출전한 올림픽 성적은 47위에 그치고 만다.​허나 1998년 도..

비운의 테니스 세계랭킹 1위 - 모니카 셀레스 (Monica Seles History)

어긋난 팬심으로 잃어버린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천재​1973년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난 모니카 셀레스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5살때부터 테니스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소질을 보인 그녀는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프로로 전향. 첫 시즌에 세계 랭킹 6위에 오르며 여자 테니스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그 후 약 1년 후인 1990년 16세라는 나이로 최연소 프랑스 오픈 단식에서 챔피언이 되는 기염을 토하며전세계 테니스 팬들을 경악시키게 되는데...​그녀의 우승에 사람들이 놀란 것은 최연소 챔피언이라는 타이틀도 있지만 당시, 여자 테니스계의 여제라 불리는 슈테피 그라프를 꺾고 우승을 했기 때문이었다.​슈테피 그라프는 총 22회 그랜드 슬램 단식 우승과 4대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모두 4번 이상 우승을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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