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History]/스포츠 인물

비운의 테니스 세계랭킹 1위 - 모니카 셀레스 (Monica Seles History)

미나미슈크 2024. 8. 23.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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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팬심으로 잃어버린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천재

1973년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난 모니카 셀레스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5살때부터 테니스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소질을 보인 그녀는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프로로 전향. 첫 시즌에 세계 랭킹 6위에 오르며 여자 테니스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그 후 약 1년 후인 1990년 16세라는 나이로 최연소 프랑스 오픈 단식에서 챔피언이 되는 기염을 토하며

전세계 테니스 팬들을 경악시키게 되는데...

그녀의 우승에 사람들이 놀란 것은 최연소 챔피언이라는 타이틀도 있지만 당시, 여자 테니스계의 여제라 불리는 슈테피 그라프를 꺾고 우승을 했기 때문이었다.

슈테피 그라프는 총 22회 그랜드 슬램 단식 우승과 4대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모두 4번 이상 우승을 한 유일한 선수였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테니스 시범 종목에서 금메달.

이 후 88서울 올림픽에서 첫 정식 종목이 된 테니스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테니스 역사상 전무후무한 캘린더 골든 슬램을 달성. 총 377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여 남녀 선수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킨 선수로 마가렛 코트, 세레나 윌리엄스와 더불어 여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명이었다.

둘의 첫대결은 1989년 프랑스 오픈 준결승이었는데 이때 셀레스는 그라프에게 3전 전패를 하며 세계 랭킹 1위라는 높은 벽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1년 후인 1990년 독일에서 열린 루프트한자컵 대회에서 둘은 또 다시 맞붙게 된다. 당시 슈테피 그라프는 66연승을 달리고 있었고 이전 시합에서도 이긴 전적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패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특유의 양손 스트로크로 그라프와의 힘대결에서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 셀레스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그라프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하며 대회 우승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에 그라프의 팬들은 "당시 그녀가 세금 스캔들로 인해 컨디션 난조가 있어 졌다"며 셀레스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 후 열린 프랑스 오픈에서 셀레스는 자신이 단지 운이 좋아서 승리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결승에서 또 다시 맞붙은 두 선수.

그라프는 루프트한자 컵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셀레스는 그런 그녀를 상대로 여유롭게 2전 전승을 하며 생애 첫 그랜드 슬램 단식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자신의 천재성을 들어낸다. 셀레스는 이렇게 세계 랭킹 1위의 그라프를 이기면서 단숨에 세계 랭킹 2위에 오르며 1990년 한해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전성기를 맞은 셀레스는 1991년 1월 호주 오픈에서 우승을 하면서 그 해 3월 그라프를 제치고 세계 랭킹 1위에 올랐고 한 해동안 16개의 토너먼트에서 모두 결승에 진출하여 10번의 우승을 차지.

그 중 부상으로 불참한 윔블던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하였고 1992년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US 오픈을 제패하며 3개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획득.

1993년 호주 오픈에서 또 다시 만난 그라프와의 대결에서도 승리하며 3년 연속 호주 오픈 정상에 오르면서 1991년 1월부터 1993년 2월까지 34개의 토너먼트에서 33번의 결승전에 진출하여 22개의 타이틀을 획득.

159승 12패 92.9%의 승률을 그랜드 슬램 토너먼트에서는 55승 1패 승률 98%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으며 이 중 총 4차례 그랜드 슬램 결승에서 그라프를 상대로 3승 1패를 기록하면서 더 이상 세계 랭킹 1위는 그라프가 아닌 셀레스라는 것을 몸소 증명한다.

이렇듯 당대 최고였던 슈테피 그라프라는 거물을 쓰러트린 셀레스에게 사람들은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가 나왔다'며 찬사를 보냈지만 이런 천재의 탄생을 모든 이가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1993년 독일 함부르크 투어 대회

셀레스는 불가리아의 '막달레나 말리바' 선수와 8강전을 치르고 있었다. 2세트까지 순조롭게 이기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그녀. 그녀를 비추던 카메라 역시 잠깐의 휴식 시간동안 테니스장 전경을 보여주며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셀레스가 비명을 지르는데 이에 급히 셀레스쪽을 비춘 카메라. 화면에는 관중석에서 한 남자를 다른 관중들이 제압하고 있었고 셀레스는 일어서서 등을 만지고 있었으며 이내 바닥에 힘없이 앉은 그녀의 등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내 관중석에서 제압을 당한 남자는 경호요원에 의해 끌려나갔고 셀레스 역시 들것에 실려 경기장 밖으로 나가게 된다.

셀레나 피습 사건.

당시 끌려나간 괴한은 '쿠엔데르 파르세'라는 남자로 그는 셀레스가 쉬는 타이밍에 그녀의 등에 23cm짜리 칼을 꽂아버리는 극악무도한 짓을 한 것이다.

평소 그라프의 광팬인 그는 "셀레스 때문에 그라프가 우승을 못한다" "셀레스가 없어져야 그라프가 다시 잘 할 수 있다"라며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데 더욱 무서운 것은 범행이 틀어질 경우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4강 티켓까지 미리 구입했놨을 정도로 계획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상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후 많은 이들이 그녀를 걱정했고 이를 느낀 셀레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이 피습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 사건으로 자신은 더욱 강해질 것이며 다시 도전하겠다'라고 말했으나 자신을 찌른 남자가 정신병력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고 나왔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는 그 어느곳에서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안전불감증에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집 밖을 나가지 못했고

엎친데 덥친격으로 아버지가 위암말기 선고를 받으면서 당시 20살이란 어린 나이에 자신에게 들이닥친 고난에 빠진 그녀는 더 이상 코트에 서지 못하게 된다.

그녀가 코트를 떠난 지 어느 덧 1년 6개월

과거 최고라 칭송받았던 셀레스는 폭식증까지 걸리면서 거의 폐인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에 자신의 딸이 망가지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셀레스에게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딸이 코트에서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라며 그녀에게 힘을 주었고 투병중인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셀레스는 마음을 다잡으며 훈련에 돌입. 1995년 8월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복귀를 하게 된다.

당시 그녀는 피습 전 랭킹인 1위로 복귀를 했는데...

피습사건 이 후 1993년 로마에서 개최된 이탈리안 오픈에서 WTA는 셀레스의 부재 기간 동안 그녀의 순위를 유지할 것을 제안.

이 대회에 참가한 상위랭커 17명을 대상으로 찬반투표가 열렸는데 찬성을 한 1명을 제외한 나머지 16명이 반대의사를 내놓았지만 WTA 회장이었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그녀의 부재는 자의가 아닌 사고로 인한 것이라며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셀레스를 그라프와 함께 공동 랭킹1위에 올린 것이다.

그렇게 랭킹 1위로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날씬했던 예전과는 달리 후덕해진 모습으로 돌아온(캐내디언 오픈) 셀레스를 본 사람들은 긴 공백기로 인해 그녀가 전과 같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셀레스는 보란듯이 결승에서 '아만다 코에처'를 꺾고 우승을 하면서 이런 관객들의 우려를 한방에 날려 버리고 천재의 컴백을 알리게 된다.

이 후 참여한 US 오픈에서는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다음 해 호주 오픈에서 우승하며 복귀 후 첫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손에 쥔 셀레스.

하지만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그랜드 슬램 우승이 되고 만다.

셀레스는 복귀 후 꾸준히 그랜드 슬램 대회 8강 이상 진출과 랭킹 10위권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유지했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단식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활약을 했지만 확실히 전성기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 2003년에 발 부상을 입은 후 프랑스 오픈에서 1라운드에 패배하면서 슬럼프가 온 그녀는 또 다시 긴 공백기를 가지다 2005년 뉴질랜드에서 나브라틸로바를 상대로 한 시범경기를 치르고 2006년에 복귀를 한다고 했으나 번복하고 이 후에도 몇번의 시범 경기를 치르다 결국 복귀를 하지 않고 2008년 2월 14일 공식 은퇴를 하게 된다.

15살이라는 어린나이에 혜성처럼 등장해 10대 시절에만 8개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획득하며 당시 테니스의 여왕 그라프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모니카 셀레스.

어긋난 팬심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으나 두려움을 이겨내고 복귀하여 2008년에 은퇴하기까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며 공로한 그녀는 2009년 7월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 헌액과 2012년 100명의 위대한 테니스 선수 중 19위에 오르는 영광을 얻으며 여자 테니스의 전설 중 한명으로 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오늘은 여자 테니스계의 비운의 천재로 불린 모니카 셀레스의 이야기였습니다. 어긋난 팬심 때문에 찬란한 미래를 망쳐버린 안타까운 이야기였는데요.

그래도 공포의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다시 복귀한 그녀의 용기와 노력을 보며 트라우마라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혹시 지금 트라우마를 겪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영상으로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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