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History]/연예계 인물

80년대를 풍미한 여신! 천녀유혼 왕조현 (Joey Wong History)

미나미슈크 2024. 8. 1. 07:58
반응형

 

짙은 눈썹,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선해보이는 이목구비. 누가봐도 단아해 보이는 그녀는...귀신이었다.

1980년대 홍콩 4대 여신이라 불리는 여배우중 한명으로 꼽히는 그녀. 왕조현. 외모상으로는 천상 배우일듯한 그녀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있는데...

증조할아버지는 왕인봉(王仁峰, 1887-1967)으로 중국의 국부 손문(쑨원)과 국민혁명 동지이고, 할아버지인 왕국번은 국민당의 악명높은 특무-정보기관인 조사통계국에 있었다. 아버지는 대만의 전직 농구 대표선수 출신으로 그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173cm라는 당시 여성으로는 큰 키를 자랑했다.

어릴 때는 미술공부를 했지만, 초등학교 이후에는 농구선수로 활동. 대만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이는 아버지가 대만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이었던 것이 와전되었다고 한다. 소문처럼 국가대표로 뽑힐만큼의 엄청난 실력은 아니라고...

그러던 중 1982년 아디다스 광고모델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입문한 왕조현은 이후 홍콩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의 픽업으로, 1984년 17세에 '금년호반회흔랭'이란 영화로 데뷔. 그녀의 운명과 같은 귀신역을 처음 맡게 된다. 왕조현은 처녀작인 이 영화로 대만 금마장 신인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을 받게 된다.

이 후, 1985년 홍콩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 영화 '재견칠일정', '천관사복', '타공황제' 등에서 아름다운 각선미와 순수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던 그녀는 당시 인기배우인 주윤발과 함께한 '의개운천'에서 그의 비호를 받으며 애틋한 사랑을 키워가는 공선 역을 맡아 호평을 받는다.

그 후, 또 한번 주윤발과 함께한 '공처 2인방'과 홍금보 주연의 '대나팔'에서 히로인으로 출연하면서 당시 미녀 스타들을 쏟아내던 홍콩 영화계에서 특출나게 돋보이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매력으로 홍콩 신예 스타들이 눈독들이는 차세대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렇게 영화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녀는 배우인생의 로또를 맞게 되는데... 1987년 그녀의 인생작인 '천녀유혼'이 바로 그녀에게 있어서 로또였던 것이었다.

‘​천녀유혼’​은 명나라 말과 청나라 초 시대 인물인 포송령이 쓴 ‘요재지이’에 나오는 아름다운 처녀귀신 섭소천과 가난한 서생 영채신의 이뤄질 수 없는 가슴 시린 러브 스토리를 실사화한 영화로 사극, 공포, 무협, 멜로, 특수효과가 기막히게 융합된 판타지물로 홍콩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당시, 엄청난 흥행을 한 주윤발 주연의 ‘​영웅본색’(1986)​​과 함께 홍콩영화 르네상스의 정점에 선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에서 갓 스무 살이었던 왕조현은 매혹적인 여귀 섭소천역으로 나와, 환상적인 미모로 극에서의 남성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남성관객들의 마음까지 홀리는데...

오밀조밀하고 단아한 이목구비, 하얀 얼굴과 대비되는 짙고 검은 눈썹, 당시 동아시아권 여배우로는 매우 큰 173cm의 키에 날씬한 몸매는 전형적인 중국 미인상보다는 현대적인 미인상에 더욱 부합해 환상 속에 존재하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일치하여 신비로운 색채가 짙게 느껴지게 했다. 이런 매력으로 왕조현은 천녀유혼을 통해 홍콩 영화계에서 여귀를 대표하는 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이 후,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왕조현은 최소 10여 편에 달하는 영화에서 여귀 역을 맡았는데 그가 여귀로 출연하는 작품은 비싼 값에 팔리게 되고 해외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홍콩 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허나, 1990년대 이후 왕조현은 매번 비슷한 역인 여귀 역을 더 이상 맡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서극 감독 작품은 예외로 두었다. 그녀는 이 후 서극 감독과 영화 '청사'를 촬영하며 다시 한 번 요괴 역활을 맡아 요괴 캐릭터의 성격을 내면화하며 완벽한 연기를 펼쳤고 관객들은 그의 자연스러운 요괴 연기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왕조현은 이 영화로 홍콩 금상장 최우수 여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상은 받지 못했다. 후에 '천녀유혼3 - 도도도'로 스페인 시체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는데 상복은 이것이 마지막이 된다.

그녀는 당시, 한참 유행했던, 사대천황, 사대여신 등에 꼭 언급되면서 점점 신화가 되어가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녀의 인기를 알려주는 몇가지 예로 그녀가 뜨기 전인 1986년에 개봉한 '의개운천'이란 영화는 '에스케이프걸'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되어 당시에는 저조한 성적을 냈었으나, 천녀유혼이 대박이 나고 인기가 높아지자 에스케이프걸의 원제목인 의개운천으로 재개봉 하어 큰 인기를 얻게 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인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왕조현은 광동성 출신 홍콩 밀입국자로 나오는데, 성폭행 당하는 씬이 나와 천녀유혼 속 섭소천이 이런일을 당한다는 이상한 이유로 주목을 받았었다.

또한, 국내 cf에도 진출을 했는데 1989년 4월에 주윤발의 "싸랑해요. 밀키스" 에 이어 2탄 격인 "안녕하세요! 왕조현입니다" 라는 cf를 찍어 국내 팬들에게 기쁨을 줬다. 하지만, 이 때 촬영시 한국 스텝에 대한 좋지 못한 매너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인터넷이 없었다) 1993년에는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예능에 출연한 적도 있다.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여성이라고 칭송하기까지 한다.

이 후, 그녀는 ‘시티헌터’(1992)​, ‘신유성호접검’(1993)​, ‘동방불패 2’(1993)​, ‘청사’(1993)등에 출연하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천녀유혼’의 섭소천 이미지는 그녀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아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하고 비슷한 역할의 다작 출연으로 이미지 소모가 심해지고 연기력도 특출나게 향상되지 못해서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여러 스캔들로 인해 지금까지 그녀를 감싸왔던 신비한 이미지를 갉아먹게 되는데...

왕조현은 1988년부터 14년간 가수 겸 배우인 치친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영화 '위사리전기'에서 같이 연기한 허관걸과 첫 스캔들이 나는데 허관걸은 '미스터 부' 시리즈나 '최가박당' 시리즈에 나온 인기 배우로 48년생인 허관걸과 67년생인 왕조현은 거의 아버지와 딸급의 차이가 났다.

그 뒤로도 상대역으로 만나는 연기자마다 모두 왕조현과 연인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분방한 생활을 하는데 우리나라에 송혜교가 생각나는 건 나뿐일까?

왕조현은 "촬영장에 나가면 다들 나를 친근한 막내동생처럼 대했다. 그만큼 나와 상대역 배우들은 대개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나 역시 스스럼없이 그들을 대하다 보니 가끔 감정이 불쑥불쑥 드러날 때도 있었다" 라며, 은연중에 자신의 독특한 연애관을 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분방함에 크게 데이게 되는 스캔들에 휩싸이게 되는데 홍콩과 대만 실업계-연예계의 거물인 임건악(林建岳, Lam Kin Ngak)과의 염문설이 바로 그것. 문제는 임건악이 처자식이 있는 중년이었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 결혼직전까지 말이 나왔던 원래 연인 치친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별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왕조현의 이미지는 바닥을 치게 되고, 영화 '청사'가 개봉됐을 때, 대만에서는 관객들이 영화의 관람을 보이코트하기까지 하면서 그녀는 연예활동에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된다.

 

결국 1994년, 불과 27세의 나이로 왕조현은 은퇴 선언을 하게 된다. 허나, 1997년 일본 영화 '북경원인'과 일본 드라마 한편에 우정출연하면서 은근슬쩍 복귀하나 영화 '유원경몽'의 촬영을 마친 뒤에 또 다시 은퇴 선언를 하게 된다.

하지만 ‘미려상해(제작 2002년, 개봉 2004년)’로 또 다시 복귀한 그녀는 이 영화로 마침내 연기에 눈을 떴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 이제는 연기력으로 승부를 하려나 싶었으나, 미려상해를 끝으로, 돌연 캐나다 밴쿠버로 떠나버린다. 이렇게 떠난 후, 더 이상 정식 복귀를 하지 않으며 간간히 잘 살고 있다는 소식만 전하고 있다.

그렇게 연예계를 떠난 그녀에 대한 궁금증은 수많은 루머로 돌게 되는데

어느 날, 뚱뚱해진 사진이 공개되자 '차기작에서의 캐릭터를 위해 살을 찌운거다; '장국영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을 받아 찐거다' 등의 구설수가 올랐고 이후에도 성형의혹, 비구니 설 등의 루머에 휘둘리나 정작 그녀는 별로 신경은 안쓰는 듯하다.

후에 본인이 직접 찍은 짧은 영상으로 자신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안부인사와 함께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한 미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른 나이에 동아시아 최고의 인기 여배우로 군림한 왕조현. 조금만 체계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했으면 조금 더 롱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가장 젊고 이쁠 때 사라진 그녀의 이미지는 강렬하게 남아 아련한 첫사랑의 느낌으로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