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History]/연예계 인물

대만에서 욕먹고 일본으로 건너가 아시아 탑 클래스가 된 그녀 - 비비안 수 (Vivian Hsu History)

미나미슈크 2024. 8. 23.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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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순한 동안 외모에 반전 섹시미로 90년대 아시아 전역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던 배우이자 가수.

1975년 대만 타이중 시에서 1남 2녀중 둘째로 태어난 비비안 수의 본명은 '비다이 슐란'으로 한족과 대만 원주민 아타얄족의 혼혈로 알려져 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서 가세가 기울게 되자, 간이 식당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 배달일을 하던 그녀는 중학생때인 1990년 대만의 CTS가 개최 한 '최고 미소녀 예능 콘테스트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하면서 단숨에 연예계에 데뷔하게 되는데 평소 배달을 하던 소녀가 하루 아침에 TV에 나오자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놀랐다고 한다.

허나 사람들이 모를 뿐 그녀는 1979년 임청하 주연 <난망적일천>이라는 작품에 엑스트라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만해도 그녀가 연예인으로 살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이듬해에 일본 걸그룹 '소녀대'의 영향을 받아 결성된 대만 '소녀대'로 가수 활동 시작.

1991년<내 마음은 여행을 갈거야> 1992년<당신의 마음을 사랑합니다>로 2년간 활동했으나 큰 성과는 이루지 못하고 소녀대는 1993년 해체하게 된다.

이 후 그녀는 '소림소자'라는 작품에 출연하며 배우로 진출하게 되나, 여전히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그 즈음, 소속사에서 그녀에게 엄청난 제의를 하게 되는데...그것은 바로 화보집이었다.

그녀는 이에 대해 난색을 표했으나, 소속사는 당시 일본 인기 배우인 '미야자와 리에'의 화보집을 보여주며 "이런 깨끗한 사진을 찍을 뿐이고 이를 기회로 삼아 성공할 것이다"라고 설득. 결국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는 허락하게 된다.

그렇게 1994년 화보집 엔젤 <Angel>을 발매.

순수한 이미지와는 상반된 파격적인 화보집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그녀가 참여한 작품 '헌팅 리스트'<Hunting List>, '엔젤 하트'<Angel Heart>, '데빌 엔젤'<Devil Angel>에서 과감한 노출 및 베드신을 선보여 한순간에 아시아 대표 섹시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이 인기에 힘입어 일본으로 진출한 비비안 수는 1995년 일본 도시바 EMI 레코드의 이스트월드와 함께 3개의 앨범을 발매하며 솔로 가수로 활동하다 1997년 일본 예능 '웃짱난짱의 우리나리'라는 프로를 통해 유닛 '블랙 비스킷'을 결성. 앨범 '스테미나'(Stamina) - 약 90만장, '타이밍'(Timing) - 약 130만장을 판매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그녀는 97년 국내에도 '천사미소녀'라는 한국어로 된 앨범을 냈었는데, 수록곡 중 '함께'라는 곡을 국내가수 '사준'과 듀엣으로 불러 화제가 되었으나, 당시 일본곡의 유통을 금지하는 법 때문에 발매된지 얼마 되지 않아 전량 폐기 되었고 때문에 이 앨범은 상당히 희소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대만과 일본,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그녀는 아시아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되나 그녀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항상 꼬리표처럼 붙은 섹시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물론, 섹시한 이미지 때문에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시간이 흘러도 자신을 그러한 이미지로만 보는 시각에 그녀는 "화보집을 낸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면서 대중들도 그 때의 이미지에 자신을 매어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 당시 자신의 결정에 대해 후회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 비비안 수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에 도전. 알만한 작품 몇가지로는 국내 배우 '김민'이 출연한 성룡 영화<엑시덴탈 스파이>와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SEED>에서 아이샤의 성우 및 오프닝 담당, 그룹 UN의 멤버 '김정훈'과 함께한 한중합작드라마 <연애병법> 등이 있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07년 <인어공주와 구두>로 차이니스 필름 미디어 어워드에서 여우주연상, 2008년 <운수요>로 백화어워드에서 여우주연상, 2019년 <인면어: 저주의 시작>으로 대만필름 페스티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그동안 굳혀진 이미지를 깨고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게 된다.

비비안 수는 수많은 스캔들에 휩싸였는데

소녀대 시절 보이그룹 소호대 리더 출신의 '이기륭'과 사귀었으나, 그의 모친의 반대로 헤어졌고 2008년에는 일본 그룹 '루나 씨(LUNA SEA)'의 기타리스트 '스기조'와 사귀게 되나 그가 여자와 욕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목격하고 헤어지게 된다.

그 외에도 펑더룬, 주걸륜, 오건호, 왕리홍 등과 열애설이 났으며 가장 큰 이슈로는 제2의 진관희라 불리는 대만재벌 2세 리쫑루이의 xx스캔들의 수많은 여성 연예인 중 한명이었다는 소문이 돌아 한동안 난리가 났었다.

이렇듯 끊임없는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그녀는 2014년 자신보다 2살 연하인 싱가포르 해운기업 <마르코폴로마린>의 대표 '리원펑'과 결혼. 다음해 아들을 낳으며 정착하게 된다.

사실 그녀와 결혼한 리원펑은 이혼남으로 슬하에는 두 딸을 데리고 있었는데 연애시절 자신의 딸이 열이 난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어린시절 아버지 없이 자란 비비안 수는 '가족을 생각하는 그를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해 결혼을 결심. 결혼 후에도 의붓딸들과 자매처럼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허나 이런 그녀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2016년 남편의 사업이 2400억이 넘는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위기에 처했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방송에 나와 눈물을 흘렸으나, 그래도 "자신은 여전히 남편을 믿고 있으며 역경이 우리의 감정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면서 남편과의 굳건한 사랑을 드러내 많은 이들로부터 응원과 칭찬을 받고 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40대 중후반 중년이 된 비비안 수.

하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여전히 동안 미녀라 불리고 있는 그녀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대만에서는 대체불가한 스타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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